종강후기
나이 서른 둘 먹고 쓰는 종강후기는 이제 어딘가 좀 씁쓸하다. 하여튼 여러 번뇌들에 시달린 한 학기였다. 지금은 In Rainbows라는 앨범을 들으며 글을 적고 있는데 이 앨범에서의 라디오헤드는 마치 신이 들린 것처럼 음악을 한다.
Ok Computer나 Kid A라든지 하는 앨범들이 -나는 특히 후자를 무척 좋아하는데- 어쨌든 좋은 음악으로 들린다면 이 앨범은 음악에 깊게 빠져들게 한다기보다 음악 외적인 것들을 자꾸 생각하게 만들었다. 연구실 오는 길엔 자꾸 비가 왔다. 비가 오는 길에 Reckoner를 들었다. 어지러운 소음들이 하나의 의미로 바뀌기까지는 십초가 필요했고 그리고 기타 하나만 필요했을 뿐이다. Videotape는 어쩌면 내가 인생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 중 하나다. 단조로운 곡이 어딘가 모르게 불길해지는 데에는 엇박자의 메트로놈 하나만 필요할 뿐이었다. 2007년의 라디오헤드는 이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고 그렇게 음악하는 게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연주를 하고 노래를 했다.
의미라는 게 병이라면 이 앨범에서의 라디오헤드는 지독한 병에 시달리다가 그만 해탈하고 말아버린 느낌이다. 나는 이번 학기 너무 많은 의미들에 시달렸다. 가깝게는 지난 일주일간 초기하분포를 다루다가 그만 내가 미쳐버릴 것 같아 일찍 집에 퇴근했다가 밤에 다시 출근하는 루틴을 반복했다. 보다 길게는.. 또 나도 모르게 의미를 부여해버린 관계들이나 사건들이 있었고 그래서 한 학기 내내 앓았다. 어쨌든 시달릴만큼 시달렸으니 좀 털어버리고 가고 싶은 마음이다. 번뇌라든지 하는 것들은 매우 가깝게는 나의 살들로 돌아왔다; 일단 살 좀 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