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rie come home
- 연구
간만에 연구가 잘된 날이었다. 지난주 미팅 이후로 여러가지로 슬럼프가 와서 연구실 나와도 하는둥 마는둥 노래 들으면서 유튜브 보면서 찔끔찔끔했는데, 오늘 그래도 결과 하나를 내긴 했다. 현재까지 상황은.. 원래 교수님이 생각했던 큰 그림이 있었는데 크게 두 가지의 스토리가 엮여 있었다. 하나는 펀더멘탈한 거고 하나는 그걸 일반화하는 부분. 근데 일반화하는 부분이 아무리 봐도 안될 거 같아서 말씀드렸고 교수님도 어 안되겠네? 한 상황. 이번주에 이런저런 생각들을 정리해서 메일을 보내보니 교수님은 통계량에 대한 mild한 가정을 주면 그래도 기존 셋팅을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셨다. 근데 내가 보기엔 아예 갈아엎어야할 거 같아서.. 일이 커지겠다는 게 슬럼프의 원인 중 하나였고 아무튼, 그래서 (1) 일반화없이 첫번째 부분만으로도 의미있는 결과를 만들고 싶었고 (2) 어쨌든 통계량의 클라스를 바꿔서 일반화를 하고 싶은 게 내 목표였다. 오늘 한 건 (1)에 대한 스토리를 하나 만든거고.. (2)에 대한 것도 지금 생각은 있는데 이거야말로 일이 매우매우 커질듯 ㄷㄷ
- Carrie and Lowell
수프얀 스티븐스의 이 앨범은 ‘3살 때 떠난, 정신병을 앓는 어머니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수프얀의 탄식’이라는 스토리때문에 매력적이기도 하고 실제로 그렇게 들을 때에도 충분한 울림이 있다. 그러나 몇년 째 이 앨범을 들으면서 그런 스토리보다 더 깊은 이야기가 있다는 느낌이 자꾸 드는데.. 요 며칠간 앨범을 돌리면서 드는 생각들을 정리해봤다: 이 앨범은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슬픔 뿐 아니라, 어머니가 떠난 이후로 형성된 수프얀 자신에 대한 일종의 자서전이다. 어렸을 때 떠나간 어머니의 자리를 수프얀은 상상들과 환상들로 채웠다. 앨범에서는 어머니에게 듣고 싶었던 말들, 보고 싶었던 표정들의 이미지들이 계속된다:
“세살 때 어머니는 비디오가게에서 우리를 버리고 갔어 / … / 나는 문 뒤 그녀의 표정을 보았지”(should have known better)
“우리 귀염둥이, 왜 울고 있니? / (나 없이) 그 동안 겪었던 일들에서 뭘 배웠어? / 우린 다 죽어”(fourth of july)
“제가 느끼는 것들이 엄마께로 돌아가겠죠” (the only thing)
그러나 상상들과 환상들이 채울 수 없는 부분이 여전하다. 이 부분에서 라캉의 상상/상징/실재계라는 도식을 떠올려도 좋을 것이다. 상상계가 메꿀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 그건 죽음으로 대표되는 실재의 세계가 삶에 갑자기 침범할 때 무척이나 명확해진다. 어머니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즉 수프얀의 상처를 메워줄 대상이 영원히 상실되었을 때 수프얀은 깊은 절망 속으로 빠져든다.
“그냥 엄마 곁에 있고 싶었어요” (eugene)
“이미 삶에서 좋은 부분들은 다 지나갔어요 / 저는 취했고 두려워요 / 듣는 사람이 없는데 노래를 부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죠?” (eugene)
“제 눈을 도려내야할까요? / … / 제가 살 이유가 어디에 있죠?” (the only thing)
“엄마, 집으로 돌아와줘요” (carrie and lowell)
상상과 환상으로 채울 수 없는 애정을 메워간 수프얀이라는 인간상. 애정결핍에 시달리면서도 사실은 어떻게 애정을 표현하고 받아야할지 모르는 수프얀. 어머니의 죽음을 들은 수프얀은 자신의 이런 부분들을 직시하고, 또 가사에 적어내려간다.
“엄마를 용서해요, 엄마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 엄마 곁에 있고 싶어요 / 그러나 모든 도로에는 다 끝이 있죠 / 엄마 곁으로 가기 두려워요 / 어디서 시작해야할지 모르겠어요”(death with dignity)
“친구야, 왜 나를 사랑하지 않지? / … / 내가 필요하다고 말해줘, 아니라면, 내가 널 원하는 그 순간에 빨간 깃발을 들어줘” (blue bucket of gold)
그런 직시가 이 앨범 특유의 감정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즉 비극 뿐만 아니라 비극이 일어난 후 망가진 스스로를 직시하는 자세. 그리고 숨김없이 가사에서 모든 것을 드러내는.. 나는 이 앨범을 들을수록 그 부분이 너무나 경탄스럽다. 어떻게 스스로를 이렇게 직시할 수 있고, 그걸 이렇게나 아름다운 가사로, 세련된 멜로디로 옮길 수 있는 걸까. 그런 부분에서 수프얀이 스스로를 독려하는 가사들은 슬프고, 또 외롭지만, 진실되다.
“너를 슬픔으로부터 구해주고 싶어” (the only thing)
“과거를 돌아보지마, 현재에 집중해, 아무것도 남지 않았어” (should have known better)
“내 동생이 딸을 가졌지 / 그들이 불러오는 아름다움이란” (should have known better)
특히 Carrie and Lowell이라는 가사에서 수프얀이 엄마를 찾는 목소리는 나를 언제나 울먹이게 한다. 채울 수 없는 상처가 있고 돌이킬 수 없이 망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이 그래도 살아가야할 이유나 당위가 있을까? 수프얀의 앨범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주지 않지만, 그러나 상처가 있다면 그 상처를 직시하게 하는 힘이 있다. 그 상처에 목소리를 줘서 함께 노래하게 하는 힘이 있다. 그리고 그런 부분이야말로 예술이라는 게 작동하는 지점이겠지..
“엄마에게 어떻게 작별인사를 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마지막 트랙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피아노와 보컬을 다 멈추고, 나보다 큰 소리들이 그녀를 감싸기를 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