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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요새

이 블로그는 몇 명이 보고 있을까? 내가 좋아하는 두 명이 보고 있다는 사실은 알지만 - 근데 그 이상의 누군가가 보고 있는걸까? 그러니까 나는 어디까지 솔직해져도 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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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되겠다고 생각한 거 다시 적어보니 안된다. 그래도 이 방향으로 계속 트라이얼하고 있다. 그리고 잠깐 운동 다녀왔고 다시 연구실 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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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하다 대학생들이 주인공인 웹드라마 틀어놨는데 재밌어서 연구실 오고도 보고 있다. 소심한 신입생 + 짝사랑하는 여자애 스토리가 제일 재밌어서 몰아보고 있다. 근데 보다보니까 왜 이렇게 뭔가 가슴이 시큰한가 해서 이유를 생각해보니까.. 작년부터 1년정도 친하게 지냈던 여자애하고 말하는 방식이나 스타일이 닮아서 그랬던 듯.

걔는 대학 신입생이었고 동아리에서 만났다. 내가 동아리 팀장을 했을 때 알게 된 친구고 내가 그 당시에 필사를 학부 기숙사에서 했는데 거기 사는 친구라서 밤에 오고가고 이야기하면서 친해진듯.

근데 어느 순간 이성적인 텐션이 있다고 느꼈다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근데 아니겠지 아니겠지 하면서 나도 모르게 즐긴 부분도 있는 거 같음. 머리로는 - 내가 나이가 어렸으면 만났을 거고 이 친구는 이 친구 나이에 맞는 연애를 해야한다~ 그런 생각을 했던 거 같고 사실 또 완전 백프로 내 스타일은 아니었던 것도 있겠지. 그러나 내가 좀 더 어렸다면 만나지 않았을까?

발렌타인 데이에 그 애가 초콜릿을 주었고 초콜릿이랑 내가 예전에 좋아한다고 말했던 과자를 잔뜩 챙겨주었다. 그리고는 주변 다들한테 이렇게 줬다고 이야기를 덧붙였다. 나는 그렇구나 했다가 집에 와서 내가 좋아한다고 말했던 과자들을 잔뜩 챙긴 걸 보고 무척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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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학기는 힘든 학기였다. 여러가지로 그랬는데 특히 관계들에 있어서 여러가지 점에서 비우는 기간이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어도 이 친구를 만났을 것 같진 않다. 나는 내가 망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가족 이외의 애착이라는 걸 견딜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사실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작년에 오래 좋아하던 사람과 썸을 타면서 그 사실을 몸으로도 제대로 깨달았다. 결국은 오래 좋아하던 사람에게도 상처를 입혔고 나도 상처를 많이 받았다.

사람마다 할 수 있는 일 할 수 없는 일이 각자 다르겠지. 예를 들어 나는 어제 증명이 틀렸지만 그 부분에서 상처를 받는다거나 절망한다던가는 하지 않는다. 가끔 절망하긴 하는데 그게 내 인생을 뒤흔들 정도는 아님 그냥 야 이게 졸업가능하냐? 뭐먹고 살지? 이정도. 근데 애착에 있어서는 그렇지가 않아서 나는 조그마한 상처에도 너무나 쉽게 무너진다.

나이도 정말 많으니까 그 친구가 자기 나이에 어울리는 연애를 했으면 좋겠다. 가만 보니까 인기도 많아보이드만. 나는 감정의 기복이 무척 심하고 가끔은 그것을 스스로 견딜 수가 없으니까 그렇지 않은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

안 만나길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게 잠깐 떠올린 것만으로도 가슴이 무척 시큰해졌다. 나는 이제 그런 상처를 견딜 힘도 없고.. 그리고 상처를 받을만한 시간도 없다 할 게 너무 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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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되게 좋은 사람이었다는 생각을 한다. 나이는 어렸지만 무척 열심히 사는 친구였고.. 그런 점들이 되게 멋있다고 느꼈다. 다음 학기에는 마주칠 일이 없고 아마 졸업할 때까지 마주칠 일이 없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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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명이나 다시 해야지~ 제발 풀려라 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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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명을 하려면 두 메져 혹은 두 확률 변수 간의 contiguity를 보여야 한다. 원래도 나는 이 개념이 주는 질감이 무척 독특하다고 느꼈는데 Le Cam의 렘마를 보면 볼수록 되게 아름다운 개념 그리고 정리라고 생각을 한다.

모르는 대상을 잘 아는 대상으로 근사해서 근사치라도 최대한 잘 구해보자는 게 아이디어고 확률변수를 쓰면 그 근사치를 최대한 확실하게 구하자는 아이디어로 구체화된다.

근데 확률변수 혹은 메져를 쓸 때의 장점이라면 그리고 특히 내가 메져로 작업하는 걸 최근 들어 좋아하는 이유는 - 그 함수의 정의역이 서포트라는 이름으로 훨씬 친숙하게 다가오기 때문이고,

그리고 서포트들이 점근적으로 같은 함수 혹은 확률변수를 다루면, 확률 수렴이라는 장치와 함께 근사치를 구함에 있어서 더 편하게 작업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이게 자연스러운 발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직관에 대한 정당화, 나아가서 이 직관을 무척 다양한 방식으로 paraphrasing한 게 Le Cam의 렘마다. Le Cam은 통계학자 역사상 최대의 천재로 불리는 사람이기도 하고 이 당시에는 수학의 확률론과 통계학이 -지금보다도 더-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았기도 함. 천재들이 만든 정리는 -증명은 아직 안 읽어봄- 더할 것도 없고 뺄 것도 없기도 하고 나아가서 문학적으로 너무나 아름답다는 감각을 주는데… 언젠가 이 정리를 내가 더 깊이 읽을 일이 있겠지? 그걸 더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어쨌든 르캄의 렘마를 이용해서 증명을 오늘 안에 제발 좀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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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진짜 솔직한 생각 하나만 더 두고 가자.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나와는 아예 다른 방식으로 구성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그들이 기뻐하는 방식 또 상처받는 방식 상처받는 정도 모두 다 나와는 다르다는 생각을 함. 그러니까 내가 거절 아닌 거절을 했더라도 그 친구는 나만큼은 상처받지는 않았을 거다. 상처를 받았더라도 아예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가벼운 방식으로 받았을테지. 이런 비겁한 생각이 나를 위로해주고 정당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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