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little hawk
why do you c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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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짝수달에는 컨디션이 바짝 올라와있다가 홀수달에는 우여곡절이 생기는 패턴을 겪고 있다. 칠월의 첫째날이었던 어제는 갑자기 핸드폰이 망가졌다. 근데 나는 집에 따로 와이파이를 설치 안하고 무제한 데이터로 노는 편이기 때문에 -집에 티비도 없고 뭐 딴 게 아무것도 없음- 밤새 멍떄리다가 우울한 생각이 잔뜩 들어서 겨우겨우 하루를 넘겼다. 4년 쓴 핸드폰인데 생각해보니까 미국 나오자마자 샀던 거다. 처음 도착했던 날 걸어서 약 삼십분쯤 되는 곳에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가서 핸드폰을 개통하고 새로 샀던 기억이 난다. 그니까 미국에 와서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모조리 함께 했던 친구라는 것.. 그래도 이제 바꿀 때가 되긴 했지. 폰 사는 김에 에어팟 프로를 샀다. 약 5년 쓰던 에어팟을 드디어 바꾸게 되었다. 19년도 1월에 샀던 녀석.. 나이가 들어 추우면 방전되고 운동하다가도 지멋대로 방전되는 일이 잦던 친구지만 그래도 정이 많이 들었다. 근데 새로 바꾼 폰 기종은 더 이상 에어팟 1세대가 호환되지 않는다길래 어쩔 수 없이 삼. 돈이 좀 들어온다 싶었더니 바로 다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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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월이라 하면 생각나는 게 두 가지 정도 있는데 하나는 허연의 칠월이라는 시고 두번째는 수프얀의 fourth of july라는 곡이다. 작년에는 전자의 처절함에 무척 공감을 하며 또 마음을 다해 필사를 했는데 올해는, 여전히 저 시를 좋아하지만, 그러나 그렇게까지 마음 깊이 와닿지는 않는다. 어쩌면 -누군가를 가슴 깊이 좋아했던- 인생의 한 장면을 지나와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후자의 곡은 요새 들어 더욱 좋아졌는데 수프얀이라는 인물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곡이 좋아지는 게 묘하다. 자신을 버린 어머니로부터 수프얀이 듣고 싶어했던 말들. 그러나 어머니의 죽음으로 끝내 듣지 못했던 말들의 연속. 그런 말들은 무척 달콤하기도 하고 - 우리 아가 왜 울고 있니? - 수프얀이 미뤄뒀지만 그러나 피할 수 없는 생각들을 대신 내뱉어주기도 한다 - 우린 결국 다 죽어 -. 슬픔과 외로움, 애정결핍과 불안장애 그런 것들이 한 데 뭉쳐있는 복잡한 감정들을 너무 난해하지도 그러나 너무 가볍지도 않게 풀어낸 수프얀의 감각에 매번 감탄을 한다.. 사실 수프얀이 정말로 듣고 싶어했던 말은 어머니가 자신을 떠나야했던 당위였을 것이다. 그런 마음은 어릴 땐 어머니는 나를 괴물로부터 구해주러 떠난 걸거야 -wallowa lake monster-라는 상상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나이가 먹을만큼 먹어서도 수프얀이 듣고 싶었던 건 그냥 사과 한마디와 그럴듯한 이유였을지도 모르겠다. -i’m sorry i left, but it was for the best- 그냥.. 그런 장면들이 가끔씩 나를 무척이나 울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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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있던 일들을 두서없이 나열하자면 - 몇주째 교회를 나가고 있다. 이제 약간 신병대기기간과 비슷한 느낌의 새신자 교육 기간이 끝났고 사람들과 슬슬 어울리고 있다. 재밌는 남자애들이 많아서 생각보다 재밌음. 대신 이성적으로는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지 않은 환경인 게 약간 아쉽(?).
어느날은 교회에서 수프얀을 위해 기도했는데 사실은 나를 위한 기도였을지 모르겠다. 어제는 4년보다 더 전에 쓰던 공기계에 저장된 메모들을 읽어봤는데 이런 기도가 적혀있었다. ‘헤아릴 수 없는 지혜로 저의 먼 미래를 걱정해주소서.’ 감정에 깊이가 있다면, 나는 수프얀같은 사람에 있어서 슬픔의 깊이라는 걸 짐작할 수조차 없겠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게 가능하시다면 어떻게든 수프얀과 수프얀과 닮은 종류의 사람들을, 특히 그들이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도록 헤아려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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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뜬금없는데 지난주는 여름학기 조교하는 과목 교수랑 싸웠다. 자꾸 뭔가 살살 긁는 거 같길래 짜증나서 대판 싸웠음.. 예를 들면 수요일 자정까지 과제 제출인데 목요일 오전까지 그레이딩 다 마치라고 하고, 실수같은 게 있었으면 예전에 니가 예스한 부분인데 왜 이걸 이렇게 채점하냐, 나랑 대화를 기억하고 있긴 한거냐 이렇게 갈구는 식. 그리고 두시에 그런 것들을 이야기하려고 만나서 미팅을 잡았다 치면 그 전부터 메일로 계속 피드백을 주는 식이다 나는 그 전에 일을 해야하는데 자꾸 신경쓰이게. 그래서 나는 이런 식이면 일 못한다, 왜 이런 식으로 자꾸 사무실로 오고가야하는지도 모르겠고 그렇게 메일로 피드백을 줄 것 같으면 그냥 메일로 얘기를 하자. 그리고 나는 애초에 덤벙대는 편이기 때문에(지금 생각해보니까 이걸 당당하게 말한 게 레전드네) 여러번 걸쳐서 채점을 하는데 애들이 채점 빨리 해달라고 하는 것도 아닌 상황에 굳이 이렇게 시간에 쫓겨서 그레이딩해야할 이유를 모르겠다.. 뭐 이런 식으로 쏘아붙였고 교수도 솔직히 너 주 20시간 일도 안하지 않냐, 다섯명 수업인데 뭐 그렇게 힘드냐(맞는 말이긴 하네 지금 생각해보니까) 이렇게 서로 말싸움하다가 짜증나서 그냥 나 잘라버려라, 이렇게 말했고 교수도 지지 않고 절차가 복잡해서 나도 그러고 싶은데 그러질 못하겠다, 뭐 이런 지경까지 갔음..
근데 내가 잘못한 것도 맞기도 하고 또 막상 화내보니까 감정이 금방 풀려서 - 나라는 사람이 보통 이런 식임 - 그날 그냥 바로 화해(?) 비슷한 걸 했음. 나도 실수를 줄이겠다고 말했고 알겠다고 하고 자꾸 실수하는 것 특히 고치겠다고 말씀을 드렸고.. 교수도 니가 열심히 하는 거 알고 있다 이런 식으로 마무리.. 된 게 지난주고, 오늘은 그 이후로 처음으로 답지 만드는 미팅이 있었는데 분위기가 꽤 훈훈했다 내가 지난주에 화낸 게 좀 미안해질만큼. 교수가 나쁜 사람이거나 싸이코라기보다 지난주에 내가 좀 예민해져있기도 했고 내가 뭔가, 뭐랄까 다른 적당한 예쁜 표현이 생각이 안나는데, 여튼 ‘대가리가 커버린’ 느낌이 들기도 한다. 뭔가 어느새 교수랑 나를 (최소한 학생 가르치는 입장에서는) 동등하게 생각해서 이런 일이 벌어졌달까.. 난 지난 학기 디스커션 이런 것도 과목 교수보다 더 잘했는데 왜 이런 걸로 자꾸 갈굼 먹어야하지? 그리고 왜 쓰잘데기없이 자꾸 불러서 답지 미팅 그레이딩 미팅을 하지? 메일로 하면 안되나? 뭐 그런 오만한 생각들을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좀 부끄러운 생각들이다..
과목 자체는 티피컬한 categorical data analysis인데 조교를 해보는 건 첨이라 생각보다 재미를 많이 느끼고 있다. SAS는 뭐 사실 언어라고 부르기도 민망해서 그냥 하다보니 익숙해지고 그래서 기계적으로 답지 만들고 있음.. 바이오나 화학과에서 직접 연구에 써먹으려고 드는 학생도 많고 또 그렇지 않아도 이 과목 자체의 특성이 진짜 실전에서 쓰는 통계적 검정방법들을 다루는 데 있어서, 그런 검정들이 잔뜩 나오는 순간들이 생각보다 즐거웠다. 뭐랄까 하나하나씩의 의미를 곱씹다보면 새로운 부분들이 보이기도 하고 그랬다. 근데 이제는 다시 일반적인 단순/다중 회귀 - 클러스터링으로 진도가 나갈 예정이라 결국 예전에 조교하던 내용이랑 비슷할 예정.
7월 4일은 미국 독립기념일이고 보통 이때부터 해서 미국인들은 긴 연휴를 가진다. 예를 들면 이번주는 독립기념일이 목요일이니까 연차를 쓰든 어떻게 해서든 목금토일월 이렇게 노는 식. 교수님이 나한테 다른 일정 있냐기에 나는 이렇게 큰 행사가 있는 날인지 몰랐다, 그 날 사실 지도교수랑 미팅이 있다 이런 이야기를 했고 교수님은 타운에서 다양한 행사를 하니까 시간되면 가보라고 여러 링크를 보여주셨다 예를 들면 푸드트럭 행사나 아니면 불꽃놀이 행사같은. 어떻게보면 하극상을 저지른 학생인데 이렇게 어른스럽게 배려해주시는 게 고맙기도 하고 또 좀 부끄럽기도 하고 그랬다.. 내 스스로 보기에 부끄럽지 않게 앞으로는 좀 더 겸손하게 살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