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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인

수학에 있어서 나는 나 자신을 일종의 주변인 이라고 정의하는 거 같다. 나는 제대로, 정식으로 수학을 교육받았다고 하기엔 수리 나형 범위에서의 수학을 공부했고 대학에서 여러 과목들을 (복수전공학위 없이) 수강했을 뿐이다. 지금은 통계를 전공하고 있지만 학부시절에도 통계는 이중전공 학위 인정을 위한 최소한의 학점만 들었을 뿐 여러 각론들을 폭넓게 듣지는 못했었다. 열심히 공부하긴 했는데 학부 졸업 직후 나는 시야가 무척 좁은 상태여서 박사 1-2년차엔 남들 연구할 때 코스웍 따라가는 것도 벅찼음..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나를 소개할 일이 있을 때 가끔씩, 장난스레 나 자신을 근본없이 수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할 때가 있다. 그건 두 가지 의미에서 그러한데 - 위에 나열한 나의 근본없는(;) 이력 때문에도 그렇지만 내 자신도 가끔 보면 흥미에 따라 이리저리 공부하는 내용이 달라지고 또 의미를 느끼는 지점들, 재미를 느끼는 지점들을 내 식으로 표현하고 이해하고 일이 잘 풀린다면 논문이라는 형태로 새 지식을 쌓는 게 내 주요 모티베이션이기 때문이다.. (퇴고없이 글을 적다보면 문장이 길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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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를 하자면, 최근에 나는 약한 의미에서의 수학적 실재론자같은 취향을 갖고 있는데 - 그러니까 우리가 발굴해야하는 수학적 대상들이 어떤 형태로든 실재하고 (그리고 그걸 강하게 표현하면 진리같은 꼴이 될 것이고) 수학자들은 그것을 여러 도구들을 통해서 발굴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게 최근의 내 세계관이라는 얘기. 이걸 다르게 표현하자면, 수학적 대상들이 실재하고 구성된 방식들이 그것을 발굴하기 위한 인간의 도구들과는 사실은 다른 nature를 갖고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추측을 해볼 수도 있을 것 같고.. 그런 의미에서 나는 어떤 의미와 어떤 영역에서든 일종의 수학적 대상을 포착하려고 시도하는 연구자라면, 그것을 넓게 둘러싸고 포위해서 마침내 온전히 발굴하는 게 보다 효율적이고 또 맞는 길이라는 생각을 최근에는 하고 있다. 무슨 얘기냐면, 우리는 어떤 문제 혹은 대상이 어떤 (해석학이든 대수든 통계든 계산이론이든) 각론에 속해있다고 생각하곤 하는데 그러나 사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면 여러 각론보다도 넓은 범위의 관점에서 문제를 서서히 포위하는 게 더 올바른 관점이지 않을까 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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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변호라고 표현을 했냐면, 사실 이런 얘기를 하려면 ‘깊게 파고들 능력도 또 넓게 공부할 능력도’ 전제가 되어야 설득력이 있는건데 나는 전자의 능력은 많이 부족한 편이기 때문이고 그러므로 사실은 위의 내용이 그냥 자기위로 혹은 셀프정당화일지도 모른다.. 그런 여지를 좀 남겨두고 싶었다 나아가서 나는 깊게 공부할 능력이 부족해서 그렇게 공부하는 분들을 보면 무척 존경스럽다는 코멘트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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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정말로 연구실에 나오기 싫은 날이었다.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어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하루종일 게임만 하고(포케로그..) 그리고 폭식하고 일어났더니 몸도 찌뿌둥하고 걍 하루 쉴까 생각했음. 근데 그러다가 나오게 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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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실에 나온 몇 가지 다른 이유들이 있지만 -리한나의 ANTI를 애플뮤직 돌비 사운드로 듣는 느낌이 좋다든지, 읽고 싶은 시집이 하나 생겼는데 아이패드가 연구실에 있다든지-, 그 중 본문과 관련된 이야기를 풀어보자면..

나를 가슴뛰게 만드는 이름들이 몇 개 있는데 비트겐슈타인, 튜링, 그리고 Peter Hall이 그 목록에 포함이 된다. 그 중에서 어제 새벽에 튜링에서부터 시작한 현대 계산복잡도 이론을 무척 상세하게 설명한 교과서를 주워듣게 되었고 이걸 읽어보고 싶다는 느낌이 있었다. 그래서 귀찮더라도 나가보자는 생각이 있었음. 교과서 제목은 Turing Computability: Theory and Applications인데 연구실 와서 서문을 읽으니 그 내용이 무척 아름다워서, 대충 번역해서 공유해본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에 향하는 긴 복도에는 (마치 대리석에서 형상을 발굴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건 의역임-)미켈란젤로의 미완성작들이 쭉 나열이 되어있다. (…) 미켈란젤로는 스스로를, 조각을 하는 게 아니라 대리석 안에서 어떤 형상을 보고 그리고 나머지 대리석들을 형상으로부터 파내는 작업을 하는 사람이라고 인식했다.

이와 비슷한 것이 1936년에서 1939년의 앨런 튜링이었는데, 그는 대리석으로부터 계산가능성의 형상을 다른 누구보다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효율적으로 계산 가능한 함수들의 형식적인 정의를 찾는 게 첫번째 단계엿지만, 그러나 그런 정의들이 계산가능성을 포착하다는 일을 증명하는 일은 순수 수학적인 작업이면서도 예술적인 성과였다. 괴델은 스스로 그것이 가능할지 잘 모르겠다는 의심을 표현한 적이 있다. 다른 연구자들은 재귀 함수, 람다-정의 가능한 함수, 그리고 arithmetization of syntax 등의 수학적 형식화들의 형태로 이 문제를 고민했다. 그 사이에서 튜링은 대리석 안에서, 각 단계에서 유한개의 프로그램과 유한개의 반복을 유한개의 계산을 통해 시행하는 간단하면서도 직관적인 도구, 즉 컴퓨터를 보았다. 더 놀라운 점은 튜링은 이 기계가 어떻게 모든 효율적인 계산 가능한 processes들을 포착(포함)할 수 있는지를 명확하게 증명했다는 점이다. 괴델은 튜링만이 이 부분을 달성했다는 점을 바로 알아보았다. (위의 책 서문 1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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