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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후기 등

운동을 다녀왔다. 어제는 진짜 가기 싫었는데 동기애가 같이 가자고 해서 덕분에 다녀옴. 몸이 풀린 덕분에 오늘도 갈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어 우리 토미에게 감사.. 직접 말하긴 쑥스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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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목요일 미팅에서 야심차게(?) 준비했던 부분이 또 까여서 좀 다운되어 있었다. 의식하지 않으려고 해도 와 이번엔 진짜 되겠는데? 싶었던 부분이 뭔가 애매하게 까여서 여러모로 기분이 좀 좋지 않았음. 왜 그랬냐면 (1) 뭔가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틀린 감각때문이기도 했지만 (2) 뭔가 교수님이 디테일을 더 봐주셨으면 쭉 이대로 끝날만한 부분인데 자꾸 지체되는 기분이 들어서 그러기도 했다..

자꾸 성과라든지 실적이라든지 논문이 언제나오나 이런 부분들을 생각하지 말자 말자 다짐을 해도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기분이 크게 나빠진 걸 보고 나도 놀랐는데, 요새는 내가 연구중심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도 그렇게 기분이 나빠진 걸 보니 요 근래 기분이 좋았던 대부분의 이유가 연구 때문이었나? 싶었기 때문. 하지만 요새의 모토는 대충 말하면 되는대로 살자 거창하게 말하면 아무것도 분별하지 말자.. 나든 타인이든.. 그런 맘으로 살아가려면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게 아무래도 무척 중요한 거 같다. 열심히 연구도 하겠지만 그러나 계속 거리를 두는 연습도 필요..

여튼 오늘은 한숨을 푹 내쉬며 그래 한번 해보자 하고 빡집중했는데 일단 확실하게 뭔가 말할 거리들이 생겼고 이게 진짜로 될지 말지는 아직 잘 모르겠음. 근데 될 거 같고 만약에 교수님이 안된다고 할 것을 대비해 제대로 설득(?) 할 준비도 되어있음. 며칠 계속 백지 증명해보고 진짜 괜찮다 싶으면 미팅 잡아야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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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년만에 시집을 사고 필사를 했다. 최근 필사를 한 것이 5월말쯤이었으니 진짜 두달만에 한 필사. 황인찬의 ‘사랑을 위한 되풀이’라는 제목의 시집과 ‘고백은 어째서 편지의 형식입니까’라는 제목의 시집을 샀다(이북이 있어서 참 좋다).

시집에 대한 감상부터 남기자면- 황인찬에 대한 내 평가는 점점 올라가는데 이 시집 자체가 좋다기보다 황인찬이라는 시인이 구성하는 분위기가 대체 불가능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이 시집 자체는 막 그렇게 좋진 않았으나 - 구관조 씻기기 등보다 밀도가 많이 떨어진다고 느꼈다 - 그러나 가벼운 문체에서 불길함을 자아내며 뭔가를 담아내려하는 황인찬 특유의 분위기가 오랜만에 즐거웠다. 한편 오병량 시인의 시집은 알라딘 소개만 보고 샀는데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한가지 단점이라면 필사하기엔 시보다는 산문에 가까운 글들이 많아서 좀 망설여진다는 것. 그래도 몇 개의 시는 무척 좋았고 그 중에서 좋았으며 또 옮길 길이에 있어서도 적당한 시 하나의 전문을 옮겨본다:

  • ‘말하는 법이 없었다’, 오병량

여기 무릎을 안고 모로 누운

여러 날을 알았으나

모르는 여자

돌멩이의 깨진 얼굴은 영원히 뒹구는 중이어서

처음 있는 헤어짐이 아닌데도 단 한 번의 헤어짐처럼

병원에 가지 마요

나와 같이 아파요

  • 남은 이야기들

내가 할 수 있는 양의 사랑을 지나서인지 아니면 나이가 들어서인지 시를 읽어도 예전과 같은 통렬함이 거의 없다. 그게 안타까울 때도 있으나 그러나 그 감각을 위해 굳이 사랑으로 뛰어들 생각은 없음.. 그래도 좋은 문장들을 보면 기분 좋고 그런 감각들은 오래갔으면 좋겠다. 만약 무덤덤해지는 게 나이 때문이라면, 그건 조금 슬픈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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