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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pain

실리카겔의 제목의 곡을 한참 들었다. 원래도 좋아하는 곡이었는데 어쩌다보니 운동하면서 라이브 버전을 들었는데 눈물날만큼 좋았음. 김한주의 보컬은 호불호가 갈리는 걸로 아는데 적어도 이 곡을 김한주보다 잘 부를 사람은 없지 않을까.. 어떤 점에서 그렇냐면, 어떨 때 들으면 웃는 것 같고 어떨 때 들으면 울먹이는 목소리로 들린다는 점이 재밌다. 그리고 또 라이브 버전이 무척 좋다고 느끼는데 - 연주력과 무대 장악 등등 실리카겔이라는 밴드의 역량이 드러날 뿐 아니라 떼창이라든지 하는 현장의 열기가 뭔가 더 울컥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다.. 덕분에 어깨 굉장히 불태우고 옴.

애플 뮤직에는 번스타인의 말러 후기 녹음본들이 다 돌비 음원으로 실려있다. 카라얀도 안되어있는데 무척 감동.. 내가 좋아하는 6번 3,4악장을 들었고 카라얀의 연주와 또 나란히 놓고 듣기도 했다. 그러면서 든 생각 - 번스타인의 이 음반이 특별한지에 대해 몇 단어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가 느끼기에 여기서 번스타인과 빈 필은 마치 내일이 없는 것마냥 연주를 하고 포효를 한다. 3악장은, 정말로 몰락이 곧 다가오는 것마냥 처연하고 애절하게 연주를 하고 어딘가 안기려하고 4악장에선 정말로 무언가 거대한 몰락이 다가오는 것마냥.. 금관은 울부짖고 현은 어딘가로 미친듯이 달려간다. 그런 점에서 이걸 듣고 카라얀의 연주나 혹은 번스타인 스스로의 이전 음반을 듣다보면 어딘가 작위적인 느낌이 든다. 그만큼 번스타인의 이 음반은 음악 이상의 것을 달성하려 시도했겠다고 할 수 있겠고.. 이 지점에서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지만 나에겐 아마 인생 탑5 음반을 뽑으라면 무조건 뽑지 않을까…

요새 나라는 사람의 근본이 뭘까? 라는 생각을 -그렇게 무겁진 않게-하고 있는데 어떤 점에서의 근본이냐면 - 내 은사님이 계시다면 누가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 성격이 소심하면서도 무척 예민해서 학창시절에도 선생님들과는 깊은 교류를 맺은 적이 없었고.. 그나마 고3 담임? 근데 검색으로는 어디 계신지 안나옴.. 그래서 대학까지 생각해보니까 솔직히 추천서 써준 교수님들도 -내가 학부졸업하고 바로 유학을 나왔으니- 수업만 들었고 면담만 몇 번 했다 뿐이지 ‘은사님’이라고까지 부를 수 없을 것 같고 -물론 추천서 써주신 은혜를 잊지는 않아야겠다-.. 그러다보니 생각난 분이 계신데, 학부시절 통계수학/통계학과 선형대수/인문계 미적2 교양을 수강했던 교수님이 바로 그 분이다.

(이하는 네이버 블로그에선 몇 번쯤 풀었던 얘기)

전역하고 통계든 수학이든 아무것도 모르던 찰나에 -무척 용감하게도!- 이분의 통계수학 + 행렬이론을 한번에 수강했고 큰 충격을 받았다. 두 가지 점에서 그런데.. 과제를 도저히 풀 수가 없다는 점에서도 그랬고 근데 무엇보다 매우 희미하게 보이는 감각들이 너무 아름답고 우아해서 이걸 내가 왜 몰랐지? 이걸 모르고 어떤 의미있는 이야기를 할 수가 있지? 이런 충격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교수님의 강의는 명강이었고 또 매우 엄하셨는데, 내 모교에선 통계학과가 정경대에 있고 교수님은 수학과에서 오셨으니 애들이 답답하기도 하셨을 것이고 한편으론 여기서 제대로 가르쳐놔야 애들이 다음에 제대로 배운다.. 그런 생각도 든다..

여튼 그래서 학점은 어땠냐면.. 통계수학은 무려 씨쁠을 받았고(에프 안나온 게 용하다) 행렬이론은 A나왔던 거 같음. 행렬이론 진짜 어둠속을 헤맸는데 어떻게 저 학점이 나온지를 아직도 모르겠음. 그만큼 같이 듣던 애들도 힘들었던 게 아닐까(중간 평균이 25점인가 그랬고 그래서 교수님이 강평하면서 우리를 무척 혼냈음 25점은 너무한다고;). 근데 어쨌든 그 학점이 내게는 뭔가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희망을 줬던 거 같고 앞서 말했던 그 뭔가 되게 희미하지만, 이쪽 공부가 뭔가 아름답다, 아름다움을 넘어서 학문을 하기엔 이 방향이 ‘올바르다’ 내지는 ‘맞다’, 그 감각을 따라서 다음 학기는 수학과 해석학, 통계학과 회귀분석 수리통계1을 다 넣고 여기서 학점 잘 나오면 유학 준비해보자, 올 에이쁠이 아니면 포기하겠다 이런 맘으로 방학에 루딘 범위를 무턱대고 다 외웠던 기억이 난다..

그 학기의 학점이 괜찮았기 때문에 내가 지금 미국에서 이 생고생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여튼 그 다음 학기엔 미적2를 같은 교수님께 들었다. 여전히 미적2는 너무 어려웠지만 나름 열심히 했다. 보통 수학과 수업을 듣는 정경대 친구들은 유학을 준비하는 경제학과 애들이 대부분이었고 그 당시는 통계학과 애들은 거의 없었는데.. 그리고 경제학과 애들의 공식같은 게 있었다면 ‘해석 12, 선대 12, 미적1 정도는 학점을 들어야 유학 나갈 수가 있다’ 이런 말들이 돌았다. 그 말은 미적2는 진짜 나 공부 좀 한다 싶은 경제학과 애들만 남았다는 이야기였고.. 그래서 수업 분위기도 좋았고 애들 실력도 좋았으며, 또 교수님의 진도도 나름 따라갈만했다. 두 가지 점에서 그랬는데, 미적1 + 미적2의 절반 진도를 한 학기에 다 빼야하는 통계수학에 비해서 미적2는 애초에 진도가 좀 널럴했고(그리고 공대에서 쓰이는 미적2 후반부는 우리는 배울 필요가 없기 때문에 더 그랬다 스토크스 정리 뭐 그런거였냐?), 또 통계수학에서 어쩄든 들었던 부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예전보다는 할만했다. 근데 솔직히 에이받을 실력은 아니었는데 교수님이 어느정도 불쌍해서? 혹은 대견해서? 학점을 올려준 게 아닌가 생각도 해본다 교수님 쫓아다니면서 질문하고 또 수업도 열심히 듣고 그랬으니..

그리고 그 다음 학기엔 수학과 실해석 수업을 들었는데, 그 수업의 교수(이 분이 나중에 추천서를 써줬는데 니가 알아서 써라 이런 식으로 쓸 수가 있어서 이게 유학에 컸던 것 같다)나 조교한테 물어보려는 생각은 못하고(왜 그랬지) 다시 이 교수님을 찾아가서 질문을 했다. 교수님께 메일을 드리고 하시는 수업 오피스아워에 찾아갔나 그랬는데.. 교수님이 모범생 왔어? 이런 이야기를 하셨던 거 같은데 그게 너무 기분이 좋았고 그랬던 기억도 난다.

음.. 마무리를 어떻게 짓지.. 11월엔 아마 한국 들어갈 거 같은데 가게 되면 꼭 인사드리고 찾아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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