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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oken hearts

make it 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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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거침없이 하이킥’을 보는 재미로 살고 있다. 유튜브로 오분순삭을 보거나 아니면 월요일 화요일마다 업로드되는 풀버전을 본다. 베댓들을 보면 어딘가 이런 가족이 아직도 살고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들을 하는데 나도 그렇다. 내가 잃어버린 2007년 풍경도 어딘가에 윤호네 집 이웃으로 있을 것만 같고 그렇다..

오늘은 잠을 실컷 잤는데 하이킥 민호랑 같이 자전거를 타는 꿈을 꿨다.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한신청구 아파트에서 민호가 자전거를 태워줬고 우리는 2-3단지 사이 어디까지 갔던 것 같다.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민호가 내게, 너 작년까지만 해도 챗지피티를 연구하는 데는 안쓴다고 그랬잖아, 근데 올해는 왜 생각이 달라졌어? 그런 질문을 했고 나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즐겁게 했다. 챗지피티가 아예 못풀던 문제들을 올해는 그래도 어느정도의 형식을 갖춘 채로는 푸는 것 같다. 그러나 여전히 사용자의 input에 너무 민감한 부분은 있는 것 같다, 예시를 들다가 나는 불변량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그 이야기를 하는 순간 나는 무척 행복해졌고 민호도 그 기분을 이해할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기분이 좋아졌다. 꿈을 깬 후엔 어딘가 기분이 많아 나아져서 연구실을 나왔다. 사실은 조교일이 있어서 나올 수밖에 없던 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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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반에 들고자 하는 부처님 곁에서 아난다는 자꾸만 운다. 그런 아난다를 두고 부처님은 ‘슬퍼하지 말라, 탄식하지 말라,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모든 것과는 헤어지기 마련이고, 없어지기 마련이고, 달라지기 마련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라는 말씀을 하신다. 나는 이게 부처님이 아난다에게 줄 수 있는 최대의 위로가 아니었을까 생각을 한다. 자신이 떠난 후에 슬퍼할 아난다가 걱정돼서 그 분 입장에서 할 수 있었을 어쩌면 최대의 위로. ‘아난다여, 나는 이제 늙고 노쇠하여 나이가 여든이 되엇다. 마치 낡은 수레가 가죽끈에 묶여서 겨우 움직이는 것처럼 나의 몸도 겨우 살아간다고 여겨지는구나.’

‘까라마조프’에서 아이를 잃어 울고 있는 어머니를 두고 조시마 장로는 어려서 죽은 아이들은 하나님 권좌 바로 옆에서 부모를 기다린다고, 그러니 슬퍼하지 말라고 위로를 남긴다. 그러나 어머니는 나는 지금 내 아이를 다시 보고 싶을 뿐이라고 울부짖는다. 전체적으로 무척 강한, 뭐랄까 일종의 ‘귀기’가 흐르는 ‘까라마조프’지만 그러나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도스토옙스키는 한층 더 격정적인 태도로 이야기를 한다. 아이들이 겪는 고통에 대해. 아이들이 겪는 슬픔에 대해. 예를 들어 병에 걸려 죽어가는 일류사와 그를 어떻게든 위로하려 집에 잔뜩 찾아온 아이들. 아이를 잃은 어머니. 나는 도대체 아이들이 겪는 고통들에 대해 이해할 수가 없다고 울부짖는 이반. 그리고 최근에야 ‘까라마조프’ 이전에 도스토옙스키가 개인적으로 어린 아들을 병으로 잃었다는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또 그 어린 아들의 이름이 ‘알료샤’라고. ‘까라마조프’의 알료사는 일종의 천사처럼 그려진다. 모두가 그를 사랑하고 그도 모두를 사랑하고.. 우리 알료샤가 살아있더라면 이런 모습이었겠다, 싶었을 도스토옙스끼를 떠올리면 가슴이 저릿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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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슬픈 이야기들을 적고 싶었는데 방금 오피스 아워 들른 학생이랑 한바탕 하는 바람에 문장들을 죄다 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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