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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현

나는 17년도 가을에 복학을 했고 그 해 겨울에 종현이 죽었다. 그가 죽었을 때 난 이상하게 가슴이 아팠다. 군대에서 나는 에스콰이어라는 잡지를 모았는데 아마 마지막으로, 전역 직전에 산 잡지에는 당시 푸른밤 dj를 하다 물러난 종현을 인터뷰하는 글이 있었다. 23년도 여름쯤에 나는 잡지에서 그 인터뷰를 다시 꺼내 읽어봤고 사진까지 찍어놨다:

행복하려고요. 최근 반년동안 가장 많이 생각했어요. 행복이라는 것. 저는 성향 자체가 스스로를 괴롭혀요. 이런 사람들은 행복하기가 쉽지 않아요. 대신 성장은 할 수 있죠. (…) 몇 년 전에 어머니랑 누나한테 울면서 투정 부린 적이 있어요. 술 엄청 취해서. 엄마랑 누나한테 물어봤어요. 이사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거든요. 행복하냐고 물어봤어요. 술 먹고, 자고 있는 가족들 꺠워서, 아저씨처럼. 제 삶의 첫 번째 목표였거든요. 엄마랑 누나가 행복한 거. 둘 다 자다 깨서는 행복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너무 부러운 거에요. 행복하다고 대답할 수 있다는 게. 나는 안 그런데. 나도 행복하고 싶어, 하면서 펑펑 울었어요. 엄마랑 누나한테 몹쓸 짓을 한 것 같은데. 그 때부터 행복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 거죠. 한 6개월 동안 내가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구체적으로 했던 거에요. 저에게는 그 변화의 시점이 온 것 같아요. 이젠 행복해야져야겠어요. 행복해져야 돼요. 행복하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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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두 가지의 생각을 한다. 첫째는 내가 진정 날 위한 일들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 살아있는 게 고통인데 내가 진정으로 날 아끼고 사랑했다면 나에게 더 이상 이런 순간들을 감당하게 두었다면 안됐다. 내가 나를 진정 사랑했다면 이제 이런 고통들을 어느 순간 끊어버렸어야 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삶의 이유를 찾는 것 자체가 일종의 질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내게 지금 가장 이성적으로 드는 생각들이 어쩌면 병의 증거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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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나와 닮았다면 내가 이렇게 외롭고 아플 일이 있었을까. 나는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비슷한 고통을 겪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살고 싶었을 뿐이다. 내가 생각하기론 내가 겪는 고통을 내 주변 사람들도 겪었다면 나는 이렇게 외롭진 않았을 거다. 나는 어쩌면 몇 년째 나를 속이고 사람들 틈에 섞이고 싶어서 나도 마치 그들처럼 무던한 척, 농담도 잘하는 척 살아왔던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내가 진정 나를 아꼈다면, 내가 진정 나를 사랑했다면 나는 여기 남아있어선 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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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이런 종류의 생각들이 종현이라는 사람의 유서에 나타나 있어서 마음이 아팠다. 죽고 싶어하는 마음이 행동으로 연결되는 그 사이에는 또 엄청난 거리가 있다. 그 거리까지 감당하게 한 슬픔의 크기랄까 하는 것들이 이제는 공감이 되어서 그 사람이 어딘가에서는 편하게 지냈으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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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있는 친구 S는 나와 비슷한 종류의 아픔을 겪는다. 나보다 강한 자살 충동을 더 오래 겪은 친구인데 그 반대 급부인지(?) 나보다 머리가 훨씬 좋다. 여튼 그 친구는 시집을 잘 가서 한 2년 전부터는 꽤 행복하게 지내고 있는 것 같다. 미국에서 한국에 돌아오기 전전날 나는 무척 위험한 상태에 있었다. 나는 칼로 내 배를 그어버리고 싶다는 충동을 강하게 느꼈고 그게 두려워 병원을 예약했다. 그 사이에 시간이 떠서 연구실에 들렀고 마침 그 친구가 있어서 이야기를 나눴다. 원래 나를 그렇게 좋아하진 않는 친군데 -서로 sarcastic한 농담을 나누는 그런 사이다- 그러나 그 날은 내가 심각해보였던지 한참을 내 이야기를 들어줬다.

나는 그 친구에게 이제는 그만 힘들고 아프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러니까 내가 진정 나를 위한다면 그냥 죽어야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들을 한다고. 그 친구가 했던 말이 기억이 나는데 - 그 친구는 어느 순간부터 자살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고 했다. 그냥 내일이 어느 순간 기대가 되기 시작했고 또 잔잔한 행복들 사이에서 사는 게 즐거워졌다고. 그리고 그런 종류의 마음은 아팠을 때 자신이 상상할 수 없었던 state여서 신기하다고 이야기했다. 그 친구가 나를 위로하는 방식은.. 일단 견뎌보고 만약 그래도 죽어야겠다면 그 때 자신을 다시 찾아오라는 이야기였다. 편안하게 갈 방법들을 자신은 몇년전부터 찾아놨고 또 그 몇 가지 약도 이미 구비하고 있으니 괜히 힘들게 다른 방법으로 고생하다가 죽지도 못하고 불구로 살지 말고 자신을 찾아오라고. 나는 그 말이 무척 위로가 되었다. 며칠 전엔 그 친구한테 메세지가 왔다 잘 지내느냐고. 나는 괜찮게 지낸다고, 고맙다고 답장을 보냈고 친구는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말하라는 답을 보냈다. 그게 너무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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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사에 있어서 내가 바라는 게 있다면.. 사실 여기서 더 뭔가 행복한 일들을 겪고 싶지는 않고 -이미 충분히 행복했으므로- 어쨌든 내가 바라는 게 있다면, 내가 겪는 애정결핍에도 불구하고 내가 실제로 어떤 을 행했다면 좋겠다, 그런 마음이다. 그러니까 선한 행위, 옳은 행위라고 믿던 일들을 하던 내 마음은 사실 상처받고 싶지 않은 비겁함, 혹은 애정을 갈구하는 애정결핍에 근거한 것이었더라도 그러나 그 과정에서 실제로 몇 가지의 들이 행해졌다면 좋았겠다는 생각. 내가 했던 종류의 일들을 통해 누군가는 실제로 도움을 받았다면 좋았겠다는 생각. 나아가서 내가 누군가에게 어떤 목표라든지 든든한 울타리같은 것이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 예를 들어 몇 년간 내가 했던 조교일들과 또 한국 유학생들 사이의 멘토링들에서 그런 순간들이 가능했다면 정말 좋았겠다는 생각. 4주전쯤 연구실에서 일을 하던 학부 조교생들 사이에선 작년 내 수업을 듣던 학생이 있어서 반가운 맘에 인사를 했다. 학생은 날 알아보았고 또 나아가서 내가 무척 좋은 조교였다고, 고마웠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러니까 그런 식으로 내 고장난 마음과 어긋난 태도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실제로 어떤 (도스토옙스키 식으로 말하자면) 파 한 뿌리의 선같은 것을 행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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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고사 채점을 다 마쳤다. 일할 컨디션이 나질 않아서 답지 만드는 데 한참을 걸렸지만 그래도 꽤 즐겁게 답지를 만들고 채점을 했다. 붓스트랩 estimator(이거 한글로 어떻게 되지)의 variance를 구하는 문제가 있었는데 내가 보기엔 붓스트랩 혹은 일반적으로 resampling이라는 것의 nature를 파악하는 데는 크 게 두 가지의 직관이 중요한 것 같다. 첫번째는 resampling의 관점에서는 sample이 곧 일종의 population으로 간주된다는 것. 이런 관점에서는 그렇다면 estimate에 대한 어떤 양을 구할 때 sample에 conditional한 sense에서 생각하는 게 무척 유용하게 된다. 이 관점에서는 그러므로 law of total variance를 생각할 수 있겠고.. 한편으론 실제로, resampling을 어떤 ‘sampling’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직관도 중요하다. 그러니까 붓스트랩같은 경우는 실제로 i.i.d.한 샘플들에서 복원추출을 하므로, 당연히 추출이라는 행위 자체는 independent하지만 그러나 중복되어서 뽑히는 애들이 생기게 되면 전체의 variance structure에는 dependency가 생기게 된다. 그런 점에서 (1) sample을 population으로 간주할 때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2) 또 sample로부터 resampling을 실제로 할 때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두 가지 모두에 대한 직관을 갖추는 게 나는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다..

그 점에서 대부분의 친구들은 law of total variance로 문제를 잘 풀었지만 나는 두 번째 방법을 통해 솔루션을 짰다. 그러니까 실제로 복원추출을 할 때 겹칠 수 있는 애들의 갯수랄까 확률을 고려할 때 발생하는 결과에 대한 고려. 사실 이런 고려는 bootstrapping보다 permutation을 할 때 훨씬 중요하므로.. 내 사심이 약간 담긴 그런 접근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이런 순간들이 즐거웠다. 나를 떠나가지 못하는 게 있다면 아마 이런 종류의 연구를 좀 더 하고 싶은 마음인 것 같다. 내가 궁금한 문제들이 있고 그것들을 풀 때는, 나는 적어도 나를 속이는 일 없이 나를 아낀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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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가 지나치게 어두워졌는데 나는 이 공간을 지울 생각은 없으므로, url을 어느 날 바꿀 수 있다면 바꿀 것 같기도 하다. 이미 찾아오고 계신 걸 내가 아는 분도 있겠고 나도 모르게 찾아오는 분들도 있겠고, 그러나 언젠가 갑자기 이 url이 사라지더라도 너무 놀라시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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