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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황들

오늘은 좀 덜 감정적인 글이 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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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상황에 있다고 했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사실 말도 안되게 어리광을 부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건 어리광같은 것들은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먼저 갑작스럽게 한국에 와서 몇 주째 집 밖에 나서질 못하는 나를 말없이 지켜보고 챙겨주는 가족들이 있다. 나같은 가족이 집에 있다면 나는 견디지 못하고 짜증낼 것만 같은데 우리 가족들은 많은 점에서 나에게 과분하다.

교수님들도 다양한 방식으로 걱정을 많이 해주셨다. 원래는 X, J, C 그리고 L 교수님들과 4개의 미팅을 주마다 진행했었는데 지난주부터 이번주까지 J, C 교수와의 미팅은 쉬고 있다. 솔직히 힘든 상황에 있다고 말했고 C 교수는 당장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은 이야기하자고, 식사 함께 할 수 있다고 메일을 보내주셔서 힘든 시간에도 감동을 많이 받았다. 또 J 교수도 어제 슬랙 메세지로 과 교수들과도 이런 상황을 이야기했는지, 제대로 된 support를 받고 있는지 걱정하는 메세지를 보내주셨다. 내가 알기론 본인 학과에서 싸이코로 유명한 분인데(..) 이러시니까 감동이기도 하고 또 뭔가 얼른 정신 차려야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마지막으로 제 정신일 때 나는 studentization 디테일 계산들을 거의 마쳤었다. 거의 자살 직전의 멘탈일 때도 -2년 동안 막힌 부분이었으니- 그 부분은 완성하고 싶어서 마무리 계산을 겨우 할 수 있었다. 어려운 건 작년부터 2월까지의 내가 다 해놨었고.. 사실 holder 몇 번 쓴 게 다라서 제정신이 아닐 때도 겨우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다. 그래서 적어도 그 결과에 대해선 이야기를 하고 싶어 지난주에 L 교수와 미팅을 했고 이번주 미팅은 한 주 쉬었다.

X 교수는 원래 미친듯이 바쁘기도 하고 학생들을 방임(?)하는 편이라, 원래도 내가 굳이 미팅을 잡지 않으면 미팅이 잡히지가 않는다. 그래서 말없이 몇 주간 미팅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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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내 마지막 연구 미팅은 L 교수와 했던 미팅이었다. 미팅에서는 하나의 proposition에 대해서 검토를 받았는데 - 그 명제는 mixing conditions들로 characterized된 time series data의 autocovariance function이 independent한 경우와 asymptotically 거의 같게 행동하다는 내용을 포함한다.

나는 아마 그저께부터 다시 조금씩 연구를 시작했다. 저 proposition에서 끌어낼 수 있는 건 permutation-based test statistic들의 studentized version의 asymptotical한 behaviour다. proposition이 있다면 내용 자체는 straightforward해서 조금 헷갈리는 계산 몇개와 그리고 노테이션 정리 이런 것들을 했어야 했다. 또, difference-in-means으로부터 difference-in-quantiles까지도 확장을 하고 싶은 게 우리의 욕심인데, 그 경우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studentization이 가능한지도 체크를 했어야 한다. 전자의 계산은 다 마쳐서 문서화까지 시켜놨고 후자도 내가 보기엔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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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까지만 쉬고 다음주부터는 미팅을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다. 위의 내용들만 있다면 일단 C, L 교수님들과는 적어도 2주 정도 미팅을 계속할 수 있다. 만들어야 하는 조교 과목 답지들이 좀 밀려버렸는데 - 이것들만 어느정도 마무리하고 나면 J교수와의 작업도 다시 시작해볼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X 교수와의 작업도 얼른 재개를 해야지. 나는 그러니까 다음주부터는 내가 적어도 3-4개의 미팅을 다시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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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스스로와 타인들을 속이고 살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무척 심한 애정결핍을 앓고 있음을 내 스스로에게도 속이느라, 결국 사람들이 사랑하고 또 좋아했던 내 모습들은 사실 내 자신이 아니었다는 걸 알아버렸다. 사실 몇 년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이런 식의 mental crisis를 겪고 나면 그 사실이 너무 뼈아프게 다가온다.

그러니까 나는 내가 지금 받는 호의들이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런 호의들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에 오자마자 K는 내가 힘들다는 소식에 퇴근하고 건대까지 달려와주었다. 오늘은 H를 만났는데 이 친구도 건대까지 달려와주어서 한참을 함께 있어주었다. 또 블로그에서, 내가 글을 내리지 못하게 만드는 무척 많은 갯수의 따뜻한 댓글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있어도 내가 나 자신을 진정 사랑했다면, 나는 적어도 지난주쯤에는 죽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혹은, 이 사람들이 응원하는 건 사실 내가 아니라 내 어떤 허깨비, 내가 만들었는데 나조차도 속여버리는 종류의 어떤 가면들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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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전 나는 군입대를 앞두고 비트겐슈타인의 ‘확실성에 관하여’라는 책을 읽었다. 분명히 양장본으로 갖고 있던 책인데 다시 읽고 싶어 찾아보니 집에 없어서 영문 버전 pdf를 다운받았다. 다시 찾은 이유는 부활에 대한 비트겐슈타인의 quote가 너무 인상깊어 자꾸만 되새기고 있기 때문이다: ‘구원하는 사랑은 부활조차 믿는다’.

나는 요새 인간이라는 모델이 추론하는 방식이 사실 굉장히 얕은 종류의 규칙들이라고 해야할까, 굉장히 인공적이며 또 유동적인 토대들에 기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토대들과 규칙에도 불구하고 모델을 작동하게 하는 어떤 동력이라고 할까 혹은 모델을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신비라고 느끼고, 그런 신비에 대한 표현이 사랑 혹은 신앙이라고 느낀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적어도 비트겐슈타인이 보기엔, 구원을 믿는 종류의 사랑과 인간이라는 모델을 작동하게 하는 확실성에 대한 감각들은 그렇게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둘은 비슷한 방식으로 신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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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1장에서는 죽은 나자로Lazarus를 살리시는 예수님에 대한 일화가 나온다. 나자로의 형제들은 나자로가 죽었다는 소식에 찾아온 예수님을 보고 울며 슬퍼한다. 슬퍼하면서도 마르타는 예수님을 믿는다, 원망하지 않는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는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주님께서 구하시기만 하면 무엇이든지 하느님께서 다 이루어 주실 줄 압니다.”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지만 마르타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마지막 날 부활 때에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유대인들과 마르타의 동생 마리아가 찾아와 예수님 앞에 울면서 곡한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보고 예수님도 눈물을 흘린다.

요새는 한참이고 예수님이 왜 눈물을 보이셨는지에 대해 생각한다. 함께 슬퍼하셨던건지 아니면 마리아와 마르타조차 부활을 믿지 못하는 모습에 대한 슬픔인지. 나는 요새 이런 생각도 한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믿지만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은 믿지 못한다는 건 사실 인간 존재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일화다, ‘죽는 자는 돌아오지 못한다’를 우리는 일종의 ‘확실한 사실’이라고 받아들이지만, 그러나 그것이 실제로 확실한 정도는 우리가 믿음이나 태도라고 생각해서 가변적이라고 느끼는 ‘주님에 대한 믿음’과 크게 차이가 나질 않는다, 말이 정리가 안되는데, 나자로의 일화를 읽으며 비트겐슈타인을 떠올릴 때 내가 생각하는 것들이 대략 이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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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또 보위의 Lazarus도 좋아한다. 성경 속 나자로가 묘사된 방식대로 꾸민 보위는 침대에서 울부짖는다. 또 다음 장면에서는 70년대 ‘ziggy’의 복장을 하고 한참을 불안에 떨다가 다시 옷장(처럼 보이는 관) 속으로 끌려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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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적어도 4월 15일까지는 한국에 있어야 한다. 다음주에는 한국 온김에 미국 대사관에 들려야한다. 그리고 그 다음주에는 삼성 sds쪽 사람들을 만나서 채용 상담을 좀 해보려고 한다. 작년에 캠퍼스 리쿠르팅을 왔던 분들인데 올해도 메일을 주셔서 이력서를 보내고 상담이 가능한지 여쭤봤더니 사옥으로 초대해주셔서 감사한 마음으로 찾아가려고 한다.

일단 여름 인턴 옵션이 있다면 굉장히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박사 졸업 후 채용 옵션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여쭤보고 싶다.

아마 이 헤드헌터들은 ai쪽 사람들은 아니라서 솔직히 내가 완전 ai쪽으로 당장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건 잘 모르는 것 같다(그러니 이렇게 일사천리로 초대도 해주시지 않았나 싶다). 다만 내가 느끼기에 내가 여기 취업해서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1) multiple 혹은 big data hypothesis testing의 측면에서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최신 방법론들을 제공해줄 수 있고, (2) time series data에 대한 최신의 statistical inference도 제공해줄 수 있으며, (3) distribution에 대한 causal inference들에 대한 최신 기술도 어느정도 있고 또 마지막으로 (4) ai하는 대부분의 엔지니어분들과 비교했을 때 수학적인 intuition들을 더 제공할 수 있다는 점들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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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나는 오늘도 살아냈다. 언젠가 그 사실 자체만에 대해서도 나를 칭찬해주고 또 나를 말없이 꼭 안아줄 사람이 있는 장면같은 것들을 상상한다. 그리고 그런 장면들은 이 세상에선 가능할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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