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관
우리 학교는 문과대 건물을 서관이라고 불렀다. 서관 앞에는 계단식의 광장같은 게 있었다.
우리는 같은 학교를 다녔으므로 틈나는대로 만났다. 왜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우린 그 계단에 앉곤 했다. 혹은 학교 중앙광장 잔디. 수다도 떨고 산책도 하고 그랬다. 나는 금공강이었지만 금요일에 수업이 있는 너를 만나고 싶어 한시간 걸려 학교를 오곤 했다. 그럴 때는 중앙광장보다 서관 앞 계단에서 만났던 것 같다.
너와 헤어진 후 나는 중앙광장과 서관 앞 계단들 때문에 오래 앓았다. 서관 앞에서 이야기하던 네 옆모습같은 것들. 혹은 초가을날 중앙광장에 앉아 이야기할 때 네 뒤에 있던 파란 하늘같은 것들. 저 멀리 보이던 오래된 카페, 지금은 없어진 카페같은 것들. 그 모든 것들이 사라져서 돌이킬 수 없다는 게 너무 슬펐다.
그것들이 어느새 5년도 훌쩍 지났구나, 그 기억들이 슬펐던 이유들조차 잊었지만 그 장면들이나 질감같은 것들, 그 순간이 시리도록 아름다웠던 사실같은 것들은 아직도 기억한다. 그 기억들은 실제로 내가 죽으려고 했을 때 나를 붙잡곤 했다 - 나는, 내가 열심히 살고 착하게 살다 죽으면 다음 생에는 더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천국같은 것들. 거기에선, 내가 중앙광장같은 곳에 이유도 모른 채 앉아있으면 네가 어느새 곁에 다가와 내게 말을 걸 것이다. 우린 그동안 못했던 이야기들을 실컷할 것이고 - 그리고 거기선 내가 아프지 않을 것이므로 우리가 헤어질 이유같은 것도 없는 거겠지. 그러니까 기회를 한 번 다시 줘, 이제는 내가 너를 행복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으니. 같은 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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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난 사실 당신과 헤어지려고 했었다. 당신이 약속을 파토내기를 바랬다. 나는 이 관계가 오래 가지 못할 것이고 그리고 관계가 끝나면 내가 죽도록 아플 것이라는 강한 예감에 - 그리고 훗날 사실임이 밝혀지는 그런 예감에 -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나 당신은 약속 시간에 도착했고 그 날 하루는 너무 반짝반짝 빛이 났다. 나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사랑같은 것들을 받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함께 걸었던 크리스마스 서촌의 모습같은 것들. 야경 속 반짝반짝 빛나던 당신의 모습. 당신과 함께했던 저녁. 함께 앉아있던 카페. 나를 보고 쪼르르 달려와 손을 잡던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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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상처들은 지워지지 않는다. 기억들은 지워지더라도 그러나.. 어떤 흉터들은 계속 남아서 회복되질 않는다. 그리고 기억들이 지워진다는 게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킨다 - 5년도 전의 그녀를 놓쳤을 때 나는 이런 종류의 아름다움은 내가 감당할 수가 없는거구나 깨달았던 것 같다. 가슴이 너무 아팠기 때문에 머리로도 그 사실을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로 수없이 스쳐간 인연들. 내가 마지막에 손을 뻗지 않아 그대로 흘려보낸 인연들. 시간이 오래 지나 나는 내가 사랑을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만 기억했고 그러나 그 이유를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작년 크리스마스에 다른 사람이 내 가슴 속으로 들어오게 허락해버렸던거지. 바보같이 달라질 수 있을 줄 알았던거지. 그러나 사람들은 나와는 너무 다르고 내가 아픈 방식대로 아파하지 않는걸, 만약 그랬다면 그들도 당장 견디지 못하고 돌아왔을 것이다, 아니면 애초에 만나지 않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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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되지 않는 상처들을 안고 살아간다는 걸 아프지 않은 사람들은 어떤 느낌인 줄 모를테다. 나만 긴 시간 아파하고 정신차려보면 모두가 나를 내버려둔 채 저 멀리 사라져버리는 경험같은 것들. 다시 사랑받고 싶어 손을 뻗으면 그러나 다시 무너지고 또 주저앉아 하염없이 눈물 흘리는 일들이 반복되는 것.
어제 새벽엔 새벽기도를 하러 나온 아버지와 이야기를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 나는 요새 성경을 읽고 있어서 성경 말씀에 대해 이것저것 여쭤봤다. 아버지는 돌아가신 본인의 고모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시집살이에 지쳐 자살을 했다는 고모. 나는 내 가족력에 대해 깨달아버렸다. 또 아버지의 오랜 친구가 약 20년전 일찍 돌아가신 건 알고 있었지만 그러나 그게 우울증 떄문인지는 몰랐다. 그 사실을 오늘 새벽에 알았다. 티비에는 새벽기도 유튜브가 틀어져있었다.
요새 나는 무척 강한 감정기복에 시달린다. 갑자기 슬퍼질 때는 하는 일들을 전부 놓아버리고 도망쳐버린다. 그러다가 나아지면 일하는 일들을 반복한다. 슬퍼져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는 약조차 먹지 못한다. 그러다 기운이 나면 다시 슬퍼지기 전에 얼른 약을 먹는다. 약을 먹는 일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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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은 더 안 좋아지기만 한다. 아직도 나는 중앙광장 앞의 당신을 그리고 서관 앞의 당신을 그리워한다. 그리고 우리 눈 앞에는 가을 하늘과 그리고 저 멀리에는, 지금은 없는 세렌디피티 카페가 있겠지. 나는 이제는 꽤 어른이 됐기 때문에 그 때 싸운 이유로는 싸우지 않을거야, 아니 최소한 내 자존심같은 건 접어둘거야.
작년 서촌 앞 크리스마스 풍경 속 당신을 다시 보고 싶은지는 모르겠다. 나는 헤어질 것 같은 예감에 강하게 사로잡혀 있었고 그리고 행복하긴 했지만 그러나 만날 때는 나도 힘들었다. 롱디도 힘들었고 그리고 어느 순간은 내 일들을 하는 게 더 즐겁다는 생각도 했고. 그러니까 그 때로 돌아가더라도, 혹은 그 때 나와 이야기를 할 수 있다하더라도 결론이 달라지는 건 아닐지도 모르지. 그런데 왜 아픈 건 똑같은건지 모르겠어. 돌아가고 싶은 것도 아니고 나도 당신도 모두 좋은 사람이 아니었어서, 그리고 헤어지는 일같은 건 사실 자연스러운 거잖아, 근데 왜 나만 이렇게 아픈걸까, 그게 너무 힘들고 지쳐서 이젠 견딜 수가 없어. 망가진 채로 연기하면서 사는 게 이제는 꽤 힘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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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뤄두었던 과제 채점을 10여장 정도 남기고 마음이 또 안좋아져서 관두었다. 내일 내가 기분이 괜찮다면 -사실 일이 밀려있어서 괜찮아야하고- 다음의 일들을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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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남은 과제 채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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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교수와의 미팅 준비: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일단 하이레벨 시뮬레이션인데 지금 structure에서도 weak FWER에 대한 (현재의 이론적 셋팅에서의) 시뮬레이션도 포괄이 가능하다. 다만 hierachical p-value들 간의 correlation(아마도 positive한)이 제대로 표현되어있지 않은데 이걸 코딩적으로 어떻게 구현할지를 좀 일해야한다(그렇게 복잡하진 않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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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번에 이어서 내가 생각하는, strong FWER 아래에서의 global adjustment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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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L 교수님과 함께하는 프로젝트에서는 - blockwise test에 대해서 디테일들을 얼른 정리해야하고 시뮬레이션 셋팅들을 얼른 정리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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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교수님은 아내분이 편찮으셔서 오래 휴직을 하셨다. 내가 알기론 약 2년쯤. 그러니까 C, L 두 교수님이 하시던 게 있었는데 L 교수님이 휴직을 하게 돼서 그 프로젝트가 붕 뜨게 되었고 그 사이에 내가 일하게 된 거였다. 어쩄든 아내분이 많이 회복이 되셔서 작년쯤부터 L 교수님은 복직을 하셨다. 나도 L 교수님과 알게 된 후부터는 아내분을 위해(모르는 분이지만) 기도를 드렸었고 그래서 회복되었다는 소식에 마음이 참 좋았고, 또 지난 봄방학에는 함께 하와이로 잠시 여행을 다녀오셨다는 소식에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었다.
나는 요새 잠깐 쉬었던, 교수님들과의 미팅을 다시 잡고 있다. C 교수님은 내 연락에 같이 식사도 하자고 감사한 답장을 주셨으나 나는 그제서야 사실 한국에서 가족들과 함께 있다고 답을 드렸다. 교수님은 잘했다고 답을 주셨다 - 근데 나한테 왜이렇게 잘해주시지? 나는 지도학생도 아니고 그냥 멀리서 같이 일하자고 찾아온 학생에 불과한데. 어쩄든 감사한 일이지. L 교수님과도 미팅을 잡았다. 원래 지금 하고 있었어야 한다. 그러나 어제 저녁쯤 교수님에게 메일이 왔다, 아내분 검사결과가 좋지 않아서 몸도 마음도 힘드니 혹시 미팅을 한 주 미룰 수 있겠느냐고. 짧은 메일이었지만 교수님이 힘들어하시는 게 느껴져서 나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다음주도 당연히 가능합니다, 아내분을 위해 저도 기도드리겠습니다, 그런 답장을 보냈다.
2018년쯤이었나, 혹은 2019년쯤이었나. 지금에 비하면 그렇게 슬플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 때의 나는 ‘세상엔 온통 슬픈 일들 뿐이다’라는 문장을 혼자 생각하고 또 곱씹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도 환자였었네. 사실 그 때도 나는 병원에 갔지만 그러나 병원에서는 그냥 상담만 해줬다. 어쨌든 지금 생각해도 그 말은 참 맞는 말이다. 세상엔 정말 온통 슬픈 일들뿐이다. 힘들어서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는 중에, 나는 어제부터 교수님 아내분을 위해서도 기도를 드린다. 저는 버리시더라도, 저는 가엾게 여기시지 않더라도 그러나 교수님 아내분의 건강을 위해서 그 곁에 함께 계셔주시길. 나자로를 살리시고 맹인의 눈을 띄워주셨듯이 그 곁에서 한 가정의 행복을 부디 지켜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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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느 순간 중앙광장이나 서관에 돌아가는 상상을 하지 않게 됐다. 비슷한 시점 나는 사람들이 나와는 참 다르다는 걸 실감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내가 사랑하는 방식으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 내가 사태를 기억하는 방식으로 기억하지 않는다는 것. 달리 표현하자면, 2019년의 너는 이미 나를 잊고 잘 살고 있을 것이다, 지금쯤은 다른 인연을 잘 만나 어쩌면 결혼도 했겠지. 그니까 무슨 이야기냐면, 우리가 죽고 죽어서 가는 다른 세계가 있다면 거기에서 네가 만나야할 건 내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어야하지 않겠느냐는 거다. 내 인연은 온통 너였지만 그러나 너에게는 그렇지 않을테니까, 죽어서 네가 네 인연을 못만나고 나한테 묶여있으면 그건 너무 슬픈 일이 아니겠느냐고